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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은 1919 3 1일 일본의 식민통치에 항거하고 독립선언서를 발표하여, 한국의 독립 의사를 세계에 널리 알린 점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올해는, 3.1 100주년으로 그 의미가 더욱 뜻 깊게 다가오는데요. 이번시간은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를 함께하고자 합니다.

 

 

 

 

대표적인 여성 독립운동가로 알려진 유관순 열사! 그녀는 일찍부터 조국애와 민족애를 품고 성장했습니다. 3 1일 아우내 장터에서 3,000명의 사람들과 함께 만세운동에 앞장섰으며, 일본 헌병대에 끌려가 갖은 옥고를 치를 때도, 부모의 죽음 앞에서도 그녀는 나라 잃은 고통을 견딜 수 없어 쉴새 없이대한독립만세를 외쳤습니다.

 

 

 

 

이처럼 그녀의 불굴의 저항정신세계인이 기억해야 할 인권에 대한 문제로 주목되며,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그 일환으로 미국 뉴욕주에서는 3.1절을유관순의 날을 기념일로 지정하였고, 이에 이어 뉴저지주 의회에서도 기념일 추진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3.1운동이 더욱 의미 있었던 이유는 학생들 또한  주도적으로 참여했기 때문인데요. 3.1 운동 현장에서 민중들과 학생들을 하나로 묶고 지도했던 위인이 있습니다. 바로 강기덕 선생입니다. 그는 1회 학생지도자회의를 소집하여 독립선언서를 배부하고 감시를 피하여 만세운동을 준비했습니다.

 

 

 

 

민족대표 33인이 태화관에 모여독립선언서를 외칠 때, 그는 3 1일 당일 학생들과 함께 탑골공원을 지키며 후속 시위를 주도하고, 후배 정재용 선생에게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게 하는 등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만세운동을 주도했습니다. 3.1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될 수 있었던 배후에는 강기덕 선생이 있었습니다.

 

 

 

 

김마리아선생은 2.8선언의 선봉장으로서, 일본 유학 중 조선 독립의 당위성을 위한 2.8 독립선언을 준비하고, 일본의 심장 도쿄에서 독립선언에 참여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유학생들과 함께 독립선언문을 국내로 들여와 확산시켰습니다. 이에 3.1운동 배후 세력으로 지목되어 옥고를 치렀으나, 출감 후에도 독립을 위한 활동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대한민국 애국부인회' 활동을 통해 임시정부에 군자금을 지원했으며, 미국에서는 여성 독립운동 단체인 '근화회'를 조직하는 등 3.1운동의 핵심 인물로서 독립운동에 지대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다시 한국에 귀국한 후에도 항일투쟁을 이어갔지만, 안타깝게도 1944년 독립을 1년 앞둔 채 고문 후유증으로 순국하고 말았습니다.

 

 

 

 

대한 독립을 열망했던 인물 중에는 외국인도 있었습니다. ‘조지 애쉬모어 피치선생은 아버지 조지 필드 피치가 한국인들과 접촉하며 독립운동을 지원하는 모습을 보고 성장했습니다. 미국에서 목사가 되어 상해로 돌아온 그는 YMCA에서 활동하며 한국 독립운동가를 위한 회합장소를 제공하고, 모금을 전개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승인을 위해 활동했습니다.

 

 

 

 

특히, 윤봉길 의사의 의거 이후 일본에 쫓기게 된 김구 일행을 자택에 숨겨주고, 자신의 부인 제랄딘 여사와 김구를 부부로 위장해 상해에서 탈출시킨 일화는 유명합니다. 뿐만 아니라 프랑스 언론과 경찰에 서한을 보내고, 남경 대학살 이후국제위원회’를 조직하여 일본의 만행을 세계에 알리는 , 한국의 독립을 한국인들과 함께 열망하고 물심양면 지원한 위인입니다.

 

 

 

 

신건식, 오건해 선생은 부부가 함께 독립운동을 펼쳤는데요, 신건식 선생은 친형을 따라 상해로 망명하여 의학을 공부한 뒤 독립운동 단체인 동제사, 대동보국단에 가입하여 활동하였고, 육군형무소 군의관 등에 외과 주임으로 근무하여 독립운동가와 학생들의 숙식 경비를 지원했습니다. 1939년부터는 충청도 의원으로 당선되어 임시정부에 본격적으로 참여했으며, 

 

 

 

1943년부터는 임시정부의 재무부 차장으로서, 재정, 예산 결산을 담당했습니다. 부인 오건해 선생은 중국에서 독립 운동가들의 뒷바라지에 힘썼고, 총상을 당한 김구 선생을 구하기도 했습니다.  이들 부부의 딸, 사위, , 조카, 사돈 또한 독립운동에 나섰다는 사실이 더욱 놀라운데요. 이처럼 가족 모두가 의로운 마음으로 나라를 되찾기 위해 각지에서 노력했습니다.

 

 

 

 

민족 최대의 저항 운동이었으며, 독립운동의 기폭제가 되었던 3.1 운동! 앞서 소개한 독립운동가들 外 셀 수 없이 많은 이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다는 것! 뼈아픈 고통의 역사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나라 되찾기 위해 헌신했던 그들의 숭고한 정신을 영원히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